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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0:49

정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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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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렬사는 임진왜란때 진주성에서 순절한 김천일을 비롯하여 의로운 충절 5위를 배향한 사우다.

김천일은 수원부사를 지내다가 권세가 있는 양반가에도 세금을 부과하였다가 이들의 모함으로 벼슬


을 버리고 낙향해 있다가 임진년의 난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켜 북상하였다. 수원독성산성에서 왜병을 격파하고 강화도에서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았다.
행주산성싸움에서 권율을 도와 승리하였으며, 명과 왜의 화의가 실패로 끝나자 진주성 1차 싸움의 대패를 만회하고 호남의 곡창으로 진출하기 위해 진주성에 10만 대병을 집결시키자 진주성은 호남의 관문이라 진주성을 지키지 못하면 호남의 곡창이 짓밟힐 위기에 처하여 김천일은 관군도 아닌 의병장으로 가장 먼저 입성하여 막강한 적의 군세를 막고 병든 몸으로 성과 운명을 함께 하였으며 성이 함락되자 맏아들 상건과 함께 순의의 길을 택하였다. 적은 진주성 싸움에 10만 대병을 동원할 정도로 총력을 기울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수만의 피해를 입어 호남으로 진출할 여력을 잃고 말았다.

김천일이 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한 뒤 1603년(선조36년) 좌찬성 증직과 함께 조정에서 예관을 보내 치제한 것을 계기로 향사의 건립이 추진되어 1606년 월정봉 아래 사우를 건립하고 조정에 사액을 청하여 ‘旌烈’이란 사액의 은전이 베풀어졌다. 광해군은 김천일을 영의정에 추증하였고, 영조는 친히 정렬사사제문을 내리기도 하였으며 순조도 사제문을 내렸다.

경내에는 김천일 의병장의 의병활동을 기록한 <창의사김공정열사비(倡義使金公旌烈祠碑)>가 있는데 1626년(인조 4) 나주목사를 지낸 당대의 석학 장유(張維) 지은 것으로 비록 1700여 자의 짧은 기록이지만 임진왜란 초기의 의병활동과 국내전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전시관이 있어 김천일의병장의 관련유품을 볼 수 있다. 매년 김천일 의병장의 출병일인 음력 5월 16일에 나주사람들이 모여 제사지내며 진주성에서는 순절일인 음력 6월 29일에 제사지낸다. 아이들에게 옛 선조들이 어떻게 나라를 지켰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어 휴일 나들이 장소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