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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0:21

운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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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雲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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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는 덕룡산운흥사사적 및 운흥사진여문중창기의 기록을 보면 신라 효공왕때 연기조사, 즉 도선국사가 덕룡산에 이르러 산수의 기와 이치를 보고 자리를 정하여 초막을 치고 이를 도성암(道成庵)이라 하였는데, 이후 웅치사(熊峙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웅치사의 웅(熊)자의 불을 뜻하는 점 4개가 있어 화재가 빈번하다고 판단하여 운흥사(雲興寺)로 개칭한 내용이 운흥사사적에 나타나고 있다.

운흥사는 창간 후 현재까지 7번의 중창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18세기 초반까지 30여동의 당우가 있었고, 20여개의 산내암자를 거느렸던 큰 사찰이다. 조선 후기 다선일여(茶禪一如)로 유명한 초의선사가 어린 시절 동진출가했던 절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운흥사와 운흥사의 옛 암자터인 동원과 문수암터인 문성암 주변으로 차나무가 많이 있어 곡우와 입하 사이에 많은 시민들이 차를 따고 덖을 수 있는 곳이다.

운흥사에 있던 초의선사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스님이 대둔사 주지로 부임하여 스님들 사이에서는 운흥사가 대둔사의 큰 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운흥사 초입에 있는 석장승은 할머니 장승 뒤에 강희58년(1719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인근 석장승의 제작연대를 추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자료다. 사찰 입구의 장승은 사마의 접근을 막는 금역을 표시하는 것으로 운흥사와 불회사의 석장승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불회사의 하원당장군(남)·상원주장군(여)은 운흥사석장승에서는 남녀가 엇바뀌어 표시되고 있는데, 장승에 새겨진 당(唐)은 사당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의미하고 주(周)는 꼬불꼬불한 길을 의미한다고 한다.

2001년에는 신법당지(대웅전)와 그 주변을 발굴하여 3개의 건물지를 확인하고 그 중 3건물지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을 발굴하였다. 본체와 광배, 대좌를 하나로 만든 높이 11.2cm의 이 불상은 주형거신광(배와 같은 형태로 두광과 신광이 함께 있는 광배)을 취하고 있으며, 통견으로 훤칠한 체구를 감싸면서 양쪽 다리 아래까지 드리워져 있다. 상호는 육계(부처의 정수리)가 높고 갸름하며 목에는 삼도(三道, 부처가 되기 위하여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상징함, 見道, 修道, 無學道)가 희미하게 나타난다.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줌),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소원을 들어줌)의 수인을 하고 있고, 그 크기를 고려하여 스님들이 소지하고 다니던 불상이며 삼국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남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불이 모두 광배가 없는 입상만 확인되었는데, 운흥사 출토 금동불은 본상과 광배, 대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전남에서는 최초의 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