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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0:20

불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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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회사(佛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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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은 무등산에서 이어지는 멧발이 더욱 깊어지고 굵어져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 아래서 많은 스님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불회사를 더 지나면 화순 운주사로 가는 길과 장흥 유치로 넘어가는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중장터다. 스님들이 많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섰던 장이라 그 이름을 중장터라 하였다고 한다.
불회사는 창건에 대하여 분분한 설이 있는 사찰이다. 백제 침류왕때인 384년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가 영광 법성포에 상륙하여 불갑사를 창건하고 이어 덕룡산 동쪽 기슭에 불호사(창건시 사찰명)를 세운 것이 시초라고 하며, 이와는 달리 원진국사의 속가인 창녕조씨 가문에 전해지는 오룡사적기(五龍事蹟記)에는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내물왕 11년, 고국원왕 36년, 근초고왕 21년)에 동진에서 온 인도승 마라난타존자가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366년은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소수림왕 2년(372년)보다 6년이나 앞선 기록이며, 백제의 수도 한성에 마라난타가 입성한 384년보다 18년 앞선 해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있어왔으나 서남해안 쪽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던 것은 기록이 없을 뿐 당시 뱃길을 고려할 때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다는 사실을 보면 그 당시에 벌써 인도와 교역이 있었고, 이를 통하여 불교가 전래되어 민간신앙과 함께 존속할 수 있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학계에서 백제가 영산강유역을 근초고왕 24년(369년)에 복속하였다고 하나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로 나타나는 본격적인 복속은 6세기 이후에야 백제계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사기의 기록이 영산강유역까지 아우른 것은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은 것이 침류왕 원년일 뿐이며 한성에 들어가기 전에 뱃길을 따라 영산강 유역에서 불교를 포교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불회사 입구 돌장승은 절로 들어가는 첫 머리다.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친근한 모습으로 맞이해주며, 대웅전 처마의 절묘한 선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사찰이다. 대웅전 뒤편으로 오래된 동백나무숲이 봄기운을 느끼게 해주며 비자나무숲의 상쾌함은 불회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한 가을단품은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불회사이며, 인근 나주호와 더불어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게다가 대웅전 건물의 아름다움은 빼어난 것으로 2001년에는 전라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3호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310호로 승격하였고, 내부는 22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기둥의 배흘림이나 처마 끝의 반전에서 오는 아름다운 선 또한 볼만하다. 대웅전 안의 비로자나불은 전국적으로 드물게도 건칠지불로 제작된 것으로 나주시내의 심향사 아미타불과 함께 역사적인 가치가 큰 불상이다.

현재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있고, 나한전에는 원진국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경내에 있는 또 다른 원진국사(圓眞國師)의 부도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