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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0:16

미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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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천서원(眉泉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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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마을은 옛 국도 1호선을 따라 가면 영산포 삼거리에서 구진포 쪽으로 약 1/3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제창이라는 마을 이름은 조선조 정조때 홍봉한이 흉년에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세운 제민창이 있었던 데서 생긴 이름이다. 당시 호남 좌창은 순천에 우창은 현재의 제창마을에 세워졌다.


제민창은 호남지방곡물의 5만석중 이만석을 보관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다. 대신 제창마을에 정부양곡창고가 자리하고 있어 옛날을 되새기게 한다.


가까운 택촌마을에는 영산창이 있던 자리로 영산포는 조창 및 제창이 있던 자리여서 국가 경제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마을 맨 위쪽에 자리한 미천서원은 조선시대 숙종때 남인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尾수 許穆)을 배향하고 있는 사액서원이다. 1690년 호남유림의 상소로 영산강 미천 위에 사우가 건립되어 사액서원이 되었고, 13대 미천서원장을 지낸 번암 채제공을 추배하였다.

미천서원에는 미수 허목의 문집인 기언(記言)목판 1,816장이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초아흐레에 유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허목(1595-1682)은 학자로 연구와 저술활동에만 전념하다가 60이 넘어서 벼슬에 올랐으나 당쟁으로 인해 사직하였다가 남인이 득세하자 우의정에 올랐다. 당대에 우암 송시열과의 예송논쟁은 너무나 유명하며 또한 송시열이 앓아누웠을 때 이독제독의 처방전을 주어 이를 믿은 송시열이 처방대로 약을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일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