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권

  • home
  • 문화재답사
  • 영산포권
조회 수 138 추천 수 0 댓글 0
  궁삼면토지회수투쟁기념비
 
74.jpg


삼면토지회수투쟁은 1880년대부터 1950년에 이르는 동안 나주농민들이 자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많은 피를 흘리며 벌였던 투쟁이다.

궁삼면은 원래 행정구역상의 명칭이 아니라 영친왕의 생모인 순빈 엄씨를 위해 지은 경선궁의 궁장토로 둔갑했던 나주군 지죽면, 욱곡면, 상곡면의 3면, 지금의 영산포, 왕곡면, 세지면, 봉황면, 다시면 일대를 가리킨다.


이 사건의 발단은 경저리(서울에 머무르면서 지방 관아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는 지방관리) 전성창이 가뭄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농민들에게 토지의 세금을 대납해주겠다고 백지날인을 받은 뒤 그 광활한 토지를 모두 자기 앞으로 소유권을 부당하게 이전해버렸다.

이에 농민들이 반발하면서 대한제국 고등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지만, 전성창은 이를 무시하고 이를 경선궁에 팔아버렸고, 경선궁은 다시 이를 일제의 조선수탈 선봉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팔았다. 농민들은 다시 동척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투쟁을 하면서 동경의 최고재판소까지 대표를 파견했으나 재판정에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방해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엄청난 물적, 정신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원래 토지의 일부만을 그것도 쓸모없는 땅을 유상으로 되돌려 받기도 하였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방이 될 때까지 남아 있다가 동척을 인수한 미군정의 신한공사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농민들은 자신의 땅을 남한의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던 1950년대 이후에야 유상으로 되돌려받게 된다. 나주에서는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아 일선 동사무소에서 토지의 주인 찾아주기 운동을 했을 정도였다.

1980년대 들어서 궁삼면의 토지회수투쟁은 나주농민들의 굽히지 않은 강인한 독립정신이었다며 왕곡면 장산리 국도변에 기념비를 세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작가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