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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6:14

금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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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錦城館,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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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은 객사로 사용되던 공간인데,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闕牌)와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궐례

(望闕禮)를 올리던 곳으로, 지방에서 중앙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

다.

그 때문에 나주읍성이 있던 시대에는 모든 관아 건축물이 금성관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금성관이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5 나주목 궁실조다.


이후『여지도서(輿地圖書)』,『나주군읍지(羅州郡邑誌)』,『나주목읍지(羅州牧邑誌)』등에도 나타나는데, 모두 [在銀杏亭南

牧使 李有仁 構]라 하였다. 또『금성읍지(錦城邑誌)』에도 [客舍 牧使 李有仁構後 牧使 朴奎東 重修]라는 기록이 있어 목사 이유

인이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는데, 이들 기록의 선생안에는 이유인목사가 나타나지 않아 언제 나주에 부임하였는지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주향교기(全州鄕校記)』에 이유인이 1479-1480년(성종 10-11년)에 전주부윤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금성읍지』선생안에는 1474-1479년(성종 5-10년)의 목사에 대한 기록이 빠져 있는데, 이때 이유인이 나주목사로 나주를

거쳐가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따라서 금성관의 건립은 그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성관은 일제강점기때 개조하여 칸막이를 하고 나주군청 청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해방후 여순사건때 나주에 왔던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퇴각할 때 금성관에 불을 놓았으나 군인들이 사라지자마자 이를 발견한 사람들에 의해 즉시 진화하여 피해를 보

지 않았다.


현재의 건물은 1963년 9월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복원된 금성관은 97

평으로 전국 객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그러나 완전한 모습을 찍어놓은 사진에 나타난 원래 규모를 보면 팔작지붕의

본건물 양편으로 맞배지붕 건물(동헌과 서헌)이 잇대어서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1백30평은 넘었을 것이다.


금성관은 모든 객사가 그러하듯이 지방에서 중앙권력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내내 나주의 정신이 집결되는 곳이었

고, 이곳을 중심으로 국난 극복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1592년 임진년 왜병의 침략이 있었던 때에는 호남창의사 김천일 선생이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왜병을 몰아낼 것을 다짐하고 출병식을 가졌던 곳이다. 이후 김천일은 수원 독성산성에서 왜병을 물리

치고 승리하였고, 강화도에서 한양 인근을 수복할 기회를 노렸으며, 2차 진주성 싸움에서 고립무원의 성에 입성하여 주장으로

써 왜병 10만대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다가 최후를 맞이하여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왜병은 이 싸움에서 비록 성을 함락시키기는 하였으나 막대한 피해를 입어 호남으로 진격할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

니라구한말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을 때에도 이곳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유림들이 모여 곡을 하였던 곳이

다.


따라서 금성관은 중앙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나주인의 의기를 상징하는 장소였던 것이다.현재 금성관은 나주시

제2청사인 나주시의회 청사 뒷편에 있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만 하더라도 현재의 소방서 자리에서 직선거리로 금성관까지 있었

는데, 현재금계 매일시장 입구 부근에 홍살문이 있었고, 객사의 정문인 망화루가 있었으며 그 안으로 중삼문과 내삼문이 있었고

 맨 뒤에 금성관이 있어 멀리서도 한 눈에 금성관까지 보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칸막이를 하여 청사로 사용하였고, 부족한 공간은 별도로 옆에 따로 건물을 신축하여 사용하였다. 1960년대 들

어서면서 나주군청 청사를 새로 신축하는 과정에서 금성관의 정면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나주시는 관아 건물을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연차적으로 현재의 나주시의회 청사를 헐고 망화루를 복원하고, 나주목사가 정사

를 보던 정청인 동헌을 복원하는 등 이 일대를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