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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6:03

나주목사 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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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 내아(羅州牧使 內衙,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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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성종 2년(983년) 나주에 목이 설치된 이후 조선시대까지 전남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지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 고도로서의 나주는 많은 내·외적인 훼손과 변형으로 현재 남아 있는 관아건물로는 내아와 아문인 정수루, 객사인 금성관이 전부다.

나주목사는 정3품의 당상관이 부임하게 되어 있다. 나주목은 과거 나주평야의 물산과 뱃길을 통해 들어오는 해산물 등의 집산지로

넓은 땅과 풍부한 물산은 지방관 중에서도 높은 당상관인 목사에게 큰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시기에 나주목사 자리는 대단히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기록에 없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나주목사가 정사를 보던 동헌의 위치는 지금의 금계 매일시장 부근으로 현재 목사 내아와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1872년에 그려

진 나주 지도에도 목사 내아는 나타나지 않아 그 이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주목사 내아의 공간구성은 대체로 수령의 생활공간이므로 사대부가의 안채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안방·대청·건넌방·부엌·찬

방 등으로 구성되고 주위에는 곡간 등의 부속채가 딸려 있으며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나눈 담장이 있었고 문간채가 있었다. 일제 강

점기부터 나주군수의 관사로 사용되면서 개수하여 원형을 상실하였는데, 현재 본채와 문간채만 남아 있다. 본채는 ㄷ자형 평면으로

된 팔작집으로 중앙은 전퇴를 둔 5칸으로 부엌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내아 본채 상량문에는 순조25년(1825년)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872년 지도에 나타나지 않고 있으므로 문간채와 마찬가

지로 고종29년(189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군수관사로 사용될 때까지만 해도 안채와 문간채를 내부와 외부로 나눈 담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지고 안채와 문간채만 남아 있고, 최근에 내아 왼쪽으로 안채와 떨어져서 맞배지붕의 기와집을 새로 지었다.나

주목사 내아는 관아에 딸린 내아로서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거의 유일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