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목물

  • home
  • 나주의 장인들
  • 나무목물

35.jpg


나주목물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

호남은 예로부터 학문이 출중한 사람과 예술적 소질을 가진 사람이 많이 태어난 고장으로 대체적으로 호남인들은 예술과 풍류를 즐길 줄 알았고 목공예, 도자기 공예, 죽공예 그리고 창, 시, 화 등 심지어 음식에 이르기까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서 타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 지방이다. 특히 나주 평야는 호남의 곡창 지대로서 부자들이 많았고 일반 서민들도 비옥한 농지가 많아서 생활이 윤택하여지니 살림 장만에 관심이 많아 소목 공예가 발달하였고 대체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도 특별히 관심이 많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왕실에 진상할 목물을 만들게 되었던 것과 장인들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나주를 중심으로 하여 화순, 함평, 보성, 영암 등 인접한 고장에 질좋은 나무가 많기 때문에 목공예가 발달하기도 하였다. 

목공예품은 그 생명이 재료와 기능에 있는 만큼, 훌륭한 기능도 필요하고 그것 못지 않게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나주목물이 성행했던 주된 요인은 재료구입이 쉬웠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나주·함평지방은 예로부터 느티나무가 많아서 목물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른 지방보다 좋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대량 벌채로 좋은 재료가 사라지자 공예인들이 화순 산간 지방과 장성·보성 쪽으로 이주하여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주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목물로는 생계가 어려워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으로 지정받은 김춘식을 제외하고는 부산과 일본 경도에서 나주목물 작품전시회를 연 바 있는 김광열과 같은 솜씨있는 장인도 나주를 떠나 외지에서 인테리어업을 하고 있고, 나주에 남아 있는 몇몇 사람도 어려움에 부딪혀 있는 형편이다. 

조선조 후기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한 집 건너 하나씩 목물을 제작하는 집이 있을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이씨목방, 박씨목방, 조씨목방, 안씨목방 등이 나주 성북동에 밀집되어 있어서 많은 목공예품을 생산해 냈으나 생계문제 등의 이유로 해서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김춘식과 윤재술, 김덕호만이 나주를 떠나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가 농사 위주에서 산업화 사회로 급격한 변화를 겪다 보니 농토가 많은 이곳이 상대적으로 공장지대보다 여유가 없어졌고 그와 함께 사람들이 오히려 공장 지대와 도시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나주는 발전이 더디어 목물을 찾는 이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값싼 기성품에 밀려 찾는 이가 급격히 감소해 가는 실정이다.

나주목물이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던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으로는 목물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 있었다. 정작 자기들은 여유가 있어서 목물을 사들이는 사람들도 공예인들에게는 그만한 대접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새로 배우려는 사람도 없었고 이 때문에 일을 하던 사람들마저도 그 천대가 싫어서 다른 장사나 농업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김춘식은 나주목물을 하는 소목장 가운데 나주반의 전통을 잇기 위해 인생을 바친 장인이다. 반남면 출신으로 19살때부터 생계를 위해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주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박판구 - 이석규 - 이운형 - 우상숙·장인태로부터 김춘식으로 이어지는 나주반의 계보는 오늘날도 유효하다. 그는 나주반의 기능을 인정받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1986년 지정받았고, 201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그가 만드는 전통 나주반은 해주반, 통영반과 함께 명품에 속한다. 전국 어디서 만들어지든지 나주반의 형태는 단아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 우주(상판)을 받치는 네 기둥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하고, 상판을 깎아 끼워 맞춘 변죽은 상판의 뒤틀림을 방지하도록 예방하고, 여기에 단순한 조각으로 덧댄 운각은 행주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도록 만들어 위생적인 것이 아름다운 나주반의 진정한 모습이다. 밥상 하나의 과학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판은 단단한 느티나무나 부드러운 은행나무를 사용한다. 특히 은행나무는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눌린 자국이 뚜렷히 나타났다가도 행주로 닦아놓으면 물기를 빨아들여 자연히 원상으로 회복되는 부드러움을 가진 나무다. 여기에 칠로 사용된 옷칠은 천연의 위장약이다. 장인들이 칠을 하다가 잘못되거나 조금씩 떨어진 것은 그대로 집어먹었다고 하니 밥상 하나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김춘식은 죽림동에 나주반전수관을 마련하고 전통을 찾는 많은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나주목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소개하기도 했다. (나주시 죽림동, ☏332-2684)

윤재술은 함평 나산에서 작업장을 마련하여 나주목물의 맥을 잇고 있던 김창선으로부터 일을 배웠다. 나주 문평에서부터 함평나산까지 가는 길은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나주목물 전문시장이 그 길을 따라 쭉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나주보다는 재료 구입이 더 유리하고 판로가 더 용이하였다. 그러한 김창선이 강진군 신전면에서 공방을 운영한 바 있었고 기술자로서 김백조와 장인태가 있었는데 이 때가 1958년으로 신전면 태생인 윤재술이 초등학교만 갓졸업한 나이에 나주목물의 전통장인인 김창선 공방에 들어가 소목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당시 그는 선생에게 수업료 명목으로 나락 한 섬을 바치고 기술을 배웠다 한다.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68년부터 김창선의 수제자였던 김백조를 따라다니며 작업을 하였고, 1976년 나주 영산포의 이두현 씨가 운영하던 나주목물 공방에서까지도 김백조와 같이 기술자로 일을 하면서 나주목물의 기능을 완전히 습득하였다. 드디어 1977년 7월부터 ‘고미예술사’란 공방을 마련하여 지금까지 오로지 나주목물의 전통적 맥을 유지해 왔으며 15살에 나주목물에 입문하여 40여 년간 나주목물의 전통적 기법을 유지 및 전승해왔다. 

윤재술의 주된 생산품목은 작은 붓꽂이나 다용도 꽂이, 목침 등의 소품으로부터 시작하여 장롱, 문갑, 서안상, 반닫이까지 과거 품격 높은 나주목물의 상당부분을 재현해내고 있으며 나주목물의 특징은 조각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조각장 등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주시 운곡동, ☏333-3352)

그 외에 젊은 작가로는 소반장 김춘식의 뒤를 잇고 있는 김영민, 금성산 아래 태평사 입구에서 예림원불교조각을 운영하며 각종 사찰의 내부단장이나 불상조각 등을 하고 있는 이상구 등이 현재 나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