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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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장 정관채, 윤대중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쪽은 말 그대로 바다의 색이다. 바다를 우리 옷이나 옷감에 물들였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색이다. 물을 들이는 옷감은 무명베, 모시, 명주, 마포 등 다양한데, 천을 가져오면 30×30를 염색해주는데 2만원을 받고, 염색한 천을 팔 때는 한 자에 3만원을 받을 만큼 굉장한 부가가치를 생산해낸다.

  

쪽은 여뀌과에 속하는 1년생 풀로 우리나라의 온난다습한 환경에서는 어디서든 잡초처럼 잘 자라는 풀이다.

 

쪽물은 쪽에서 얻은 염료를 말하는 것으로 충청 이남의 일조량이 많은 지방에서 자란 쪽에서 양질의 염료를 얻을 수 있다. “지석강에서 처녀가 오줌만 싸도 다시는 물이 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산강은 홍수가 많았다. 영산강변, 특히 다시면과 문평면에 그토록 쪽을 많이 심었던 것 역시 홍수가 많이 나기 때문에 홍수 대체작물로 가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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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은 3월말 전후에 모판을 만들어 파종하여 본잎이 5-6장 나왔을 때 어른 손 한 뼘 간격으로 실한 모종은 1, 약한 것은 두 개 정도 함께 자랄 수 있도록 옮겨심기를 해준다. 거름은 보통 밑거름, 중간거름, 수확 전 거름 등으로 세 번 정도면 되지만 쪽잎의 상태를 보아가며 뿌려주는 것이 좋다. 잎이 크고 두꺼우며 새까맣게 진녹색을 띠면 좋은 염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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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자라는 쪽은 8월중에 꽃대가 올라오면 베기 시작하는데, 꽃대가 만개하기 전에 씨앗을 얻을 만큼만 남기고 베는 것이 좋다.

 

베어온 쪽을 재워 염료를 추출해내는 과정은

 

큰 항아리에 쪽대를 차곡차곡 가득 차게 재우고 크고 평평한 돌로 눌러 물을 가득 채운 다음 비닐을 씌우고 고무줄로 묶어 밀봉시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놓아둔다.

 

햇볕이 좋으면 2-3, 흐리거나 비가 오면 6일 가량 두고 매일 오후에 한 번씩 뒤집어주면 잘 삭는다. 항아리 윗 표면에 청색 피막이 생기고 쪽대와 잎의 녹색 기운이 사라지면 누런 쪽대를 건져낸다.

 

쪽을 잘 건져내고 고운 체를 놓고 잘 걸러낸 다음 굴 껍질을 태워 가루로 만들어 한 섬의 쪽물에 석회 가루를 한 두 되 넣는다.

 

여기서부터는 두 형태로 쪽 염료를 사용하게 되는데, 콩대를 태운잿물을 부어 발효시켜 죽 상태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하룻밤 두었다가 다음날 위에 뜬 누런 물을 따라내고 바닥에 남은 진한 청색의 앙금을 대바구니나 시루에 보자기를 깔고 물을 완전히 뺀 다음 건조시켜 보관했다가 사용하기도 한다.

죽 상태인 쪽은 그냥 염색에 사용하고, 건조된 쪽은 몽글게 잘 부숴 3040정도 되는 잿물을 4, 5배 비율로 희석하고 고무래질을 하여 햇볕이 잘 드는 곳이나 실내 온도가 25이상 유지되는 발효실에 두고 표면에 생기는 청피막은 제거하여 물을 들인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하여 염색하고 원하는 색이 나오면 흐르는 물이나 큰 대야에 하루 정도 담가 잿물을 완전히 빼주어야 탈색과 천이 삭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쪽은 묵힐수록 깊은 멋이 우러나며 탈색도 적다고 한다. 특히 옛날에는 전쟁터에 나갈 때 갑옷 안에 쪽물들인 속옷을 입혔다. 이것은 상처가 잘 아물고 가시에 찔리거나 벌레 물렸을 때도 쉽게 낫게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국교가 불교였던 관계로 경을 온 정성을 들여 베껴 공덕을 쌓는 이른 바 사경(寫經)을 할 때는 닥종이와 쪽을 함께 떠서 만든 감지(紺紙)에 금니나 은니로 그림을 그리고 경을 필사하였는데, 쪽과 함께 뜬 이 감지는 오래 두어도 좀이 슬지 않아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문평면 북동리 명하마을에서 윤병운 옹이, 다시면 가흥리 정가마을에서는 정관채 선생이 전통방식으로 쪽물을 들여왔다. 문평면과 다시면에서만 쪽을 재배하여 쪽 염료를 만들어내던 곳이다. 나주시내에도 예전에는 물방이 있어서 염료를 팔았는데, 쪽을 비롯한 염료를 소매하던 곳으로 그곳에서 옛날 어머니들은 쪽 염료를 사다가 집에서 쪽물을 들여 옷감을 장만하였다. 대략 6.25전까지 상당수의 쪽물장인이 나주 전역에 존재했으나 전쟁 후 모두 그만두었다. 그 이후 제초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잡초처럼 자라던 우리 토종 쪽이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윤병운 옹이 다시 쪽물을 들이기 시작할 때는 일본에서 쪽을 가져다가 파종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쪽물을 들이는 과정 역시 한 번 담갔다가 널어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얻고자 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들여야 한다. 요즘에는 발효시키지 않은 생쪽을 사용하는 염색도 차츰 유행하고 있으나 나주 지역에서는 전통 그대로의 방식으로 발효를 시켜 얻은 염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1830일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전통염색장 분야를 새로운 종목으로 지정하고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온 문평면 윤병운 옹과 다시면 정관채 선생을 동시에 기능보유자로 인정하였는데, 윤병운 옹은 2010년 타계하고, 윤대중 전수조교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정관채,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332-5359)

 (윤대중,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 명하마을, 336-5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