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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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기(양민학살사건)
 
 ·우익을 막론하고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집단적으로 학살된 양민학살이 6.25전쟁기에 이곳 나주에서도 있었다.
자력보다는 타력에 의한 성격이 강했던 한국의 해방, 해방 당시 북쪽은 주로 소련의 영향 아래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좌익세력이 장악하였고, 남쪽은 이승만,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친일세력을 규합한 우익세력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라는 중도좌익세력,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등이 서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군이 진주하면서 일제의 행정력과 경찰력을 그대로 활용하고 그 권력의 정점만 일제에서 미군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일제에 붙어서 조선민중을 핍박하던 자들이 일제의 패망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 관망하다가 미군정에 의해 다시 권력에 빌붙을 기회가 생기고, 여기에 정권을 잡기 위해 국내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이승만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한민당이라는 정당으로 그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