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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말 국권상실기
     단발령과 나주민란 - "한말의 국권 상실기(1894-1910)" 역사기록 자세히 보기
 
 

동학이 평정된 후 나주에는 나주관찰부가 설치되고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가 도임하였다. 당시 정국을 장악한 일제에 의해 단발령이 실시되고 나주에서도 관찰사를 대리한 참서관 안종수 등이 길을 가던 선비들을 붙잡아 무자비하게 머리를 깎는 사태가 발생하여 유림들이 이에 반기를 들고 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장성에서 송사 기우만이 의병을 이끌고 나주로 달려오는 등 그 세가 자못 왕성하였는데, 다만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외세를 물리치고 국정을 쇄신하자고 주장하면서 치안을 유지하고 있던 중 관군이 들어오자 순순히 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관군은 주모자인 김창균 부자를 체포하였고, 해남 군수로 부임했던 정석진을 압송해와서 이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모두 처형하고 말았다.

1896년 6월 전국을 13도로 개편하여 전라남도가 만들어지면서 관찰부는 광주로 옮기게 되었고 다만 나주군과 광주군이 1등군으로 편제되었다. 나주는 행정구역 개편에서 38개면, 32개 섬 가운데 32개 섬은 새로 만들어진 지도군에 넘기고, 원정·금마·비음·종남의 4개면은 영암군에, 적량·장본·여황면은 함평군에, 오산면은 광주군에, 대화면은 장성군에, 삼향면은 무안군에 넘겨 28개 면이 되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면서 나주는 의병의 근거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