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관고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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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옹관고분시대는 한국사의 시대구분을 따르자면 삼국시대에 속하는 시기다.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와 동시대이긴 하나 일제 강점기 이후 주욱 이어져온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놓고 보면 삼국 외에 또 다른 나라가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할 정도로 풍부한 유물을 보여주고 있다.

국사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의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의 내용과『진서(晋書)』, 그리고 일본의 고대기록인『일본서기(日本書紀)』등의 역사기록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산강 유역의 고대사회는 역사적으로 마한(馬韓)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마한은 삼한중 하나로 진국(辰國)에 뒤이어 한반도 남부지역에 자리 잡았으며 삼한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세기 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한(馬韓)은 경기·충청·전라지방, 진한(辰韓)은 낙동강의 동쪽, 변한(弁韓)은 낙동강의 서쪽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중국측 기록인『삼국지(三國志)』의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를 보면 얼마동안 마한이 삼한의 주도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한은 새롭게 등장한 북방계의 백제에 의해 점차 밀려나고 있음이『삼국사기』에 나타나고 있다. 온조왕 26년(서기 8년)에 마한의 국읍을 병합하였고, 27년(서기 9년)에는 드디어 마한이 멸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사료에서는 마한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온조왕대로 올려서 기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마한이 멸망하였다는 것은 중부지역의 목지국이 해체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3세기중엽으로 보고 있지만, 이시기에 남쪽에서는 마한의 성읍국가들이 남아 있다고 추정된다.

또한 고고학계에서는 이미 나주지역에서 수 차례 고분군에 대한 발굴이 이어졌고, 그 성과에 따라 역사학계와는 달리 6세기에 들어서서야 백제에 통합되었다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굴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산강 유역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밝혀진 것보다는 묻혀 있는 것이 많은 상황이다.

다만 복암리 3호분 발굴에 직접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전남대학교 임영진 교수의 주장을 보면 마한의 발전단계를 5단계로 나누고 3단계에 처음으로 영산강 유역의 마한을 언급하면서 충청도 지역의 마한이 3세기 후반에 백제에 흡수되었고, 그 잔류세력이 영암군 시종면 일대 해안과 가까운 지역에서 함평과 영암 지역으로 소국들이 존재하고 있던 세력들을 통합하여 나가는 발전과정을 거쳐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하면서 4세기 중엽에는 보다 내륙 쪽인 나주 반남 지역으로 중심지를 옮겨갔다고 보고 있다.

전라북도 지역의 옹관묘가 대형화하기 직전에서 발전을 멈춰 4세기 중엽 이미 백제에 통합되었다고 보았고, 영산강 유역은 전혀 백제의 영향력 없이 독자적인 대형 옹관묘를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영진 교수는 마한 세력이 다시 5세기 중엽에 다시 지역으로 중심지를 옮겨 그곳에서 6세기 초에 마지막을 맞게 되었다고 보았고, 그 증거로 복암리 3호분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