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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15:18

반남박씨의 시조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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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기를 누설한 박지관 (반남박씨의 시조묘)
 
 남박씨의 시조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박응주인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박의는 이웃마을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지관을 모셔다가 명당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박지관은 고개 너머 자미산(자미산성이 있는 산)의 느긋한 산허리를 둘러보더니 덕흥리 동쪽에 묘자리를 잡아 주었다. 풍수지리라면 박의도 조금은 아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박지관이 잡아주는 자리보다 차라리 그 밑이 더 좋을 듯 싶었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박지관이 정해주는 곳이라 우선표시를 해놓고 속으로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박지관의 뒤를 밟아 보았다.

집으로 돌아간 박지관이 부인의 마중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자 박의를 재빠르게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부인이 “호장어른 묘자리는 괜찮은 데로 잡아 드렸나요?”라고 묻자 박지관이 “기막힌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를 가르쳐 줬다가는 아무래도 천기를 누설한 죄로 화를 입을 것 같아 그 자리를 살짝 피해 좀 위쪽에 있는 자리를 잡아주었지. 그 자리도 무던합디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박의는 이튿날 박지관이 말한 천하의 명당에 무덤을 쓰기로 하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이를 도와주려고 고개를 넘어온 박지관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박의에게 “왜 내가 잡아주는 자리는 피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자리가 더 좋을 듯 싶어서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박지관은 “이것은 모두가 운명일세. 사실 자네가 파는 이 자리가 명당일세. 내가 화를 입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는데 자네가 알아냈으니 자내 가문의 복일세”라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런데 박의가 다시 구덩이를 파려고 하니 구덩이에서 새만큼이 큰 벌이 솟아 나오더니 고개로 넘어가던 박지관의 뒤통수를 쏘아 죽였다고 한다.

그후 박응주의 후손은 현손 박상충이 예조정랑에 이르고 이어 벼슬길이 끊기지 않아 조선시대에 반남 박씨는 명문거족이 되었다. 이를 두고 후손들은 명당의 발복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박지관이 벌에 쏘여 죽은 고개를 ‘벌고개’라 부르고, 박응주의 묘자리를 ‘벌명당’이라 부르고 있다. 박씨 문중에서는 벌고개 바위에다 이를 기려 ‘蜂峴’이라 새기고, 오늘날까지 매년 시월 보름날 박지관의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