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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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15:04

구한말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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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나라 구한 의병장들 
  
태원은 큰 의병장이다. 1870년(고종7) 나주 문평면 북동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유학을 공부했고 이웃고을까지 장사로 유명했다. 25세때 갑오농민전쟁에 참가하였고 단발령에 반대하는 의병에 참가하였으나 아관파천후 나주로 돌아왔다. 1905년 을미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아우인 김율과 함께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일제측 기록에 ‘전남지방을 대표하는 거괴’로 기록될 정도로 나주를 본거지로 하여 함평·영광·장성·담양 등지에서 폭넓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기삼연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있으면서 후에 단독부대로 독립,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린 호남의병장의 대표적 인물 중 한사람이다. 그러나 1908년 요통치료를 위해 광산군 임곡면 오산리 박산에 있던 중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부하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외에도 나주출신으로서 구한말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던 의병장들은 많다. 조정인 의병장은 1907년에 기병하여 김태원과 협력하여 활동했는데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에 탄약제재소를 세우고 광주·나주·함평·장성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최택현 의병부대가 의병을 조직하여 영산포 일본헌병대와 일경을 공격하는 등 활발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임난 때의 최희량 의병장의 후손이며, 훗날 3·1운동때 활약했던 최기정 등을 배출했다. 같은 다시 출신으로 박민수 의병장이 있다. 그는 갑오농민전쟁때 나주읍성을 앞장서 지켜낸 사람이며 나라를 빼앗긴 이후 널리 의병을 모아 그의 휘하에서 활동한 사람이 수백명이나 된다. 그는 일본헌병들이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많은 피해를 입혔다. 또 권택은 당시 남평출신으로 1907년 기삼연 밑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09년 장흥에서 체포되었다. 이렇듯 나주출신으로 의병장을 지낸 분들은 수없이 많으며 국외에서도 많은 분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국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은 셀 수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