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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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15:01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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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뛰어난 학자, 신숙주
 
 종은 아들 문종에게 “집현전 학사중 문학적 재능과 정치적 경륜을 겸비한 사람은 오직 신죽주 뿐이라. 앞날에 반드시 그에게 국사를 맡기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다. 그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가담하였다지만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왕조를 위해 할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선택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으로 그는 일생을 통해 국정에 참여하여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숙주(1417~1475)는 외가인 노안면 금안동에서 공조참판 신장의 아들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한다. 22세때 문과에 급제하고 25세때 집현전부수찬(副修撰)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27세때 서장관으로 일본에 가서 文名을 떨치고 돌아와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지었다. 훈민정음창제과정에서 가장 공이 컸으며,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갈 때 서장관으로서 수행하였다.

그는 중국어·일본어·몽고어·여진어에 능통해서 사신이 오면 통역관이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였다. 후에 세조가 왕위에 오를 때 1등공신이 되었고 우·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2번이나 지냈다. 세조는 즉위 후 그를 언제나 침실에까지 불러 의논하였으며 고령군(高靈君)에 봉하였다. 1460년(세조 6)에는 강원도·함길도 도체찰사가 되어 야인들을 소탕하고 돌아왔다. 그후 예종과 성종 대에도 공신과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경국대전』,『세조실록』,『예종실록』편찬에 참여했다. 또 일본과 여진의 지도를 만들었고, 『동국통감』,『오례의』를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다. 59세로 세상을 떠나자 문충(文忠)의 시호가 내리고 성종묘(成宗廟)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