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전

  • home
  • 역사속인물
  • 조선시대 이전
2015.07.16 14:59

정가신

조회 수 297 추천 수 0 댓글 0
고려의 명신 정가신
18.jpg


가신(?~1298)은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 시중동에서 향공진사 송수의 아들로 태어나 금성산 북쪽기슭 금안동에서 자랐다. 초명은 흥(興)이고 호는 설재(雪齋)이다. 어려서 중(僧) 천기를 따라 개경에 가 안홍우의 집에서 부양받았고 고종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277년(충열왕 3) 보문각대제가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보문각대제로 있으면서 나주 금성산신의 영험함을 왕에게 고하여 이때부터 나주에서 금성당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면서 향리단속과 민생고해결에 주력하였다.1290년(충렬왕 16)세자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가서 원세조 쿠빌라이의 특별한 예우를 받고 돌아와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고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을 지었다. 1298년(충열왕 24)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올랐다.
정가신은 문장력이 뛰어나 당시 외국으로 보내는 문서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으며 성품이 정직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로 인해 나주정씨집안이 고려말의 권문세족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후에 문정(文靖)의 시호가 내리고 충선왕묘(忠宣王廟)에 배향되었으며, 1693년(숙종 19)나주 노안면 금안동에 그를 배향한 설재서원이 세워졌다.